情愿
<center><img s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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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img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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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max-width: 100%; width: fit-content; height: auto;'></center>
나의 인생은 언제나 외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먹거나 먹히거나, 살거나 죽거나.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없어야만 하는 거였으며, 덤덤한 것이 아니라 덤덤해야만 하는 거였다.
깨지고 부스러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머릿속을 한껏 휘젓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뜬다. 몸이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걷는지 달리는지, 천장을 보는지 바닥을 보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신은 내게 미신을 따르고 광증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지만, 무리의 법칙은 언제나 생존과 직결되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불문율이었다. 내게 미쳐버린다는 말은 언제나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의미였다. 어쩌면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님을 인정하고야 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수많은 악몽이 매일 밤 나를 잠식할 적에 한 줄기 여명처럼 꾼 짧은 백일몽 때문일까. 어쩌면 당신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된 이후일지도 모르고. 불안정한 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농담 한 번에 섞인 웃음소리가 간질거렸던 나날 탓일 테다. 그래서 그만 삶과 죽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당신 손에 죽는 것도 괜찮은 마침표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귀 염오는 욕망을 모른다. 정확히는 그것을 품을 자격을 거머쥐지 못했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굳건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미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당신이 아무것도 쥐지 못한 자신보다는 좀 더 원하는 길을 걸어갈 테니까. 제가 품을 수 있는 갈망이 하나 있다면 죽고자 하는 이유라.
“아직도 날 죽이고 싶나?”
“나를 믿어?”
어째서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을 하나. 왜 나를 뒤흔들고 마는가. 굳건히 세운 결심을 시험하려고 하는가.
“3년 전 랍하가 내게 말했지.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이 내게 행운을 줄 거라고. 밉살맞은 놈이지만 그 말 하나만큼은 맞는 말이었어. 마지막 남은 것이 결국 내게 행운을 가져다줬지. 안 그래, 귀 염오?”
가슴에 파고든 백일몽의 파편이 으스러졌다. 누구도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지 않는다. 심장이 옥죄듯 아팠다. 눈을 감는다면 금방이라도 무언가 흘러내릴 것처럼 신체 곳곳이 고장 난 기분이었다.
귀 염오는 학라의 정점이 될 생각이 없었다. 둘 중 하나만 살리겠다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그리 정했다. 애초에 라 하현이 소유욕을 느끼는 이 땅은 자신의 영역조차 아니었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 정점에 오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꼭두각시가 아니면 무어라 말인가. 당신을 잃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의 몫이 아닌 경배를 받느니 비렁뱅이처럼 바닥을 구르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그럼에도 귀 염오는 라 하현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도, 행동도 무엇하나 신뢰할 수 없었다. 차갑게 식은 머리는 분명 그가 자신을 죽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바라 마지않는 끝이기도 했다. 그 정도 선택지는 제 의지로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를 사랑이라고 감히 불러볼 수 있다면.
동시에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일말의 온기를. 약간의 자비심을. 입술 사이로 조소가 새어나왔다. 라 하현, 당신이 이겼다. 어떤 선택이든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사냥꾼은 무너졌으니, 어리석을 나를 실컷 비웃어라.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라.
하지만 기나긴 통로를 지나 햇볕을 맞이하였을 때는 마치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귀 염오도, 라 하현도 죽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당신의 의중을 알아야만 했다. 길고 긴 통로를 달리는 와중에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는지, 무슨 이유로 나를 살렸는지, 어째서 자신을 보면서 웃어주는 건지. 왜 같이 살자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건지. 오만하고, 잔인하며, 냉정한 당신이 어째서 한 번 뿐인 기회를 버린 건지. 그렇다면 당신의 소유욕은 어디로 흩어진 건지.
이것이 자신의 망상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수의 백일몽이 아닌 죽어가는 중에 보는 환상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비릿한 냄새도, 기이한 목소리도 찾아오지 않는 명료한 정신이기에 두려움은 제 앞으로 훌쩍 다가와 있었다.
"나는 학라를 떠날 거야. 아마도 오랫동안 오지 않을 거야. 어쩌면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지."
“혼자서?”
되돌아온 물음에 귀염오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살리기로 한 당신은 이 말을 들으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이렇게 쉽고 무르고 유약해진 자신을 알게 된다면 뒤늦게라도 잃은 걸 되찾고자 총구를 겨눌지도 모른다.
"당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면, 둘이 되겠지"
간극.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당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처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어닥쳤다. 그래서 끊임없이 번져나가는 하이얀 포말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을 좋아했어. 사실 지금도 좋아해.”
“그냥, 이 말을 해보고 싶었어. 당신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고."
이 땅에 더는 신이 존재하지 않듯이 이 순간에 낭만도 절절하게 끓어오는 마음도 없었다.어쩌면 고별이라고 불러도 좋을 고백이었다.
<p style="text-align: right;"><i>忘掉曾有这世界,有你。
哀悼谁又曾有过爱恋。</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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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은 언제나 외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먹거나 먹히거나, 살거나 죽거나.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없어야만 하는 거였으며, 덤덤한 것이 아니라 덤덤해야만 하는 거였다.
깨지고 부스러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머릿속을 한껏 휘젓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뜬다. 몸이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걷는지 달리는지, 천장을 보는지 바닥을 보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신은 내게 미신을 따르고 광증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지만, 무리의 법칙은 언제나 생존과 직결되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불문율이었다. 내게 미쳐버린다는 말은 언제나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의미였다. 어쩌면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님을 인정하고야 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수많은 악몽이 매일 밤 나를 잠식할 적에 한 줄기 여명처럼 꾼 짧은 백일몽 때문일까. 어쩌면 당신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된 이후일지도 모르고. 불안정한 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농담 한 번에 섞인 웃음소리가 간질거렸던 나날 탓일 테다. 그래서 그만 삶과 죽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당신 손에 죽는 것도 괜찮은 마침표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귀 염오는 욕망을 모른다. 정확히는 그것을 품을 자격을 거머쥐지 못했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굳건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미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당신이 아무것도 쥐지 못한 자신보다는 좀 더 원하는 길을 걸어갈 테니까. 제가 품을 수 있는 갈망이 하나 있다면 죽고자 하는 이유라.
“아직도 날 죽이고 싶나?”
“나를 믿어?”
어째서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을 하나. 왜 나를 뒤흔들고 마는가. 굳건히 세운 결심을 시험하려고 하는가.
“3년 전 랍하가 내게 말했지.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이 내게 행운을 줄 거라고. 밉살맞은 놈이지만 그 말 하나만큼은 맞는 말이었어. 마지막 남은 것이 결국 내게 행운을 가져다줬지. 안 그래, 귀 염오?”
가슴에 파고든 백일몽의 파편이 으스러졌다. 누구도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지 않는다. 심장이 옥죄듯 아팠다. 눈을 감는다면 금방이라도 무언가 흘러내릴 것처럼 신체 곳곳이 고장 난 기분이었다.
귀 염오는 학라의 정점이 될 생각이 없었다. 둘 중 하나만 살리겠다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그리 정했다. 애초에 라 하현이 소유욕을 느끼는 이 땅은 자신의 영역조차 아니었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 정점에 오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꼭두각시가 아니면 무어라 말인가. 당신을 잃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의 몫이 아닌 경배를 받느니 비렁뱅이처럼 바닥을 구르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그럼에도 귀 염오는 라 하현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도, 행동도 무엇하나 신뢰할 수 없었다. 차갑게 식은 머리는 분명 그가 자신을 죽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바라 마지않는 끝이기도 했다. 그 정도 선택지는 제 의지로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를 사랑이라고 감히 불러볼 수 있다면.
동시에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일말의 온기를. 약간의 자비심을. 입술 사이로 조소가 새어나왔다. 라 하현, 당신이 이겼다. 어떤 선택이든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사냥꾼은 무너졌으니, 어리석을 나를 실컷 비웃어라.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라.
하지만 기나긴 통로를 지나 햇볕을 맞이하였을 때는 마치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귀 염오도, 라 하현도 죽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당신의 의중을 알아야만 했다. 길고 긴 통로를 달리는 와중에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는지, 무슨 이유로 나를 살렸는지, 어째서 자신을 보면서 웃어주는 건지. 왜 같이 살자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건지. 오만하고, 잔인하며, 냉정한 당신이 어째서 한 번 뿐인 기회를 버린 건지. 그렇다면 당신의 소유욕은 어디로 흩어진 건지.
이것이 자신의 망상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수의 백일몽이 아닌 죽어가는 중에 보는 환상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비릿한 냄새도, 기이한 목소리도 찾아오지 않는 명료한 정신이기에 두려움은 제 앞으로 훌쩍 다가와 있었다.
"나는 학라를 떠날 거야. 아마도 오랫동안 오지 않을 거야. 어쩌면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지."
“혼자서?”
되돌아온 물음에 귀염오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살리기로 한 당신은 이 말을 들으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이렇게 쉽고 무르고 유약해진 자신을 알게 된다면 뒤늦게라도 잃은 걸 되찾고자 총구를 겨눌지도 모른다.
"당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면, 둘이 되겠지"
간극.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당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처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어닥쳤다. 그래서 끊임없이 번져나가는 하이얀 포말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을 좋아했어. 사실 지금도 좋아해.”
“그냥, 이 말을 해보고 싶었어. 당신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고."
이 땅에 더는 신이 존재하지 않듯이 이 순간에 낭만도 절절하게 끓어오는 마음도 없었다.어쩌면 고별이라고 불러도 좋을 고백이었다.
<p style="text-align: right;"><i>忘掉曾有这世界,有你。
哀悼谁又曾有过爱恋。</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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