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存立

규우 @alea_07
2025-11-1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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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그리워 마지않은 나의 사랑, 라 하현에게.</b>

  이제야 제대로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었네요. 당신과 제대로 이별한 이후로 또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낮에도 제법 공기가 차갑습니다. 당신은 좀체 티 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계절을 제법 싫어하였지요.

  나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날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당신이 두고 간 식재료로 오랜만에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과 먹었던 마지막 식사를 혼자 하는 기분은 너무나도 이상하여 목이 매이더군요. 사람이 참으로 간사하여 그리움에 질식할 것 같은 나날 속에서도 배는 고픈 게 웃기덥니다. 그 덕에 간신히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걸 버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가끔은 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해가 떴는지 졌는지도 모른 채로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만 당신 말대로 슬픔은 어느새 잿더미가 되어 서서히 사그라지고 먹먹한 마음만이 들어차더군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하루하루 벅차도 말이죠.
이따금 눈물이 흐르지만, 약과 술 없이도 잠들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당신과 찍은 몇 없는 사진을 볼 때도 이전만큼 괴롭지는 않더군요. 네. 서서히. 아주 느리더라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오랫동안 닫아둔 당신의 방 열었습니다. 맞아요. 이 일을 당신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하현의 방을 청소 했습니다. 당신의 물건을 치운 건 아닙니다. 그저 그 안에 쌓인 몇 달 치의 두꺼운 먼지를 거둬내고 묵은내 나는 침구를 세탁하고 창문을 열어 방을 환기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당신의 흔적이 짙은 공간이 점점 맑은 공기를 머금고 옅어져 가는 걸 보니 정말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곳의 청소를 끝낸 뒤에야 오래도록 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신년이 멀지 않았더군요. 당신과 신년 축제에 갔던 기억이 이토록 선명한데 다시 혼자 맞이해야 한다는 게 쓸쓸합니다. 돌아오는 그날에는 당신과 함께 나갔던 거리를 걸을지, 아니면 당신과 즐겨 먹던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꺼내는 게 이상할 테지요. 떠나기로 했던 계획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다른 땅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면 더 빨리 잊을 수 있겠지만 당신이 없는 낯선 곳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이곳에 남은 당신의 흔적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따금 나는 당신이 세상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있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단지 하현과 나의 거리는 이역만리보다 멀어 당신은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얼 먹으며 지낼까 하는 궁금함이 들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요. 네, 이런 상상을 하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저는 괜찮아졌습니다. 혹시 모를 핼러윈 데이를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요.

  사실 당신에게 한 가지 고할 것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별을 나눈 날, 한 가지 거짓말을 했습니다.
살아가겠다는 말은 진실이나, 아무래도 저는 당신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현은 내게 남은 시간이 창창하기에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나는 라 하현이라는 사랑을 나의 처음이자 끝으로 매듭짓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듣는다면 섣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종종 나를 어린아이 보듯이 바라보고는 했으니까요. 그 안에 뜻 모를 미안함이 담겨 있고는 했지요. 하지만 저는 남은 생을 온전히 당신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날 당신과 목숨을 나누지 않았다고 해도 하현을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면서 말이지요. 이건 학라에서부터 결심했던 거니까요.

  하현. 저희 일족이 내세를 믿는다는 걸 알고 있나요? 그렇기에 우리는 후일 받을 업보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미신에 집착하고 영험한 것을 둘러 죄를 줄이고자 하지요. 내가 당신에게 드렸던 옥가락지와 실 팔찌 또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악한 것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지은 죄가 있다면 제가 대속하여 짊어지기를 염원하였었지요. 그렇기에 후일 당신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한 점 바람이나 물결이 아닌, 풀과 짐승이 아닌, 당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진 곳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기를. 나는 이 삶이 끝날 때까지 기원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보잘것없는 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혹여나 아직도 세상을 부유하며 저를 지켜보고 있다면 이제는 떠나도 좋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하현. 그리고,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p style=&#034;text-align: right;&#034;><b>귀 염오.</b></p>





<p style=&#034;text-align: right;&#034;><i>추신. 이기적인 말을 하나 덧붙이자면, 살아보겠다고 했지만 당신 보다는 적게 살고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당신의 어리고 사랑스러운 애인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i></p>


<center>―――――</center>


  “귀 염오. 괜찮아?”

  눈떠 봐. 어서. 재촉하는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희끄무레한 전등불 아래 걱정스러운 시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몽롱한 정신이 부유하다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천천히 돌아온다. 그제야 귀 염오는 자신이 몸을 떨며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호흡이 가빴다. 비몽사몽 핸드폰을 확인하니 제가 겪은 것으로부터 한참 과거에 있었다. 그렇다. 그는 길고 긴 꿈속에서 라 하현을 잃는 악몽을 연달아 꾼 뒤에야 깨어난 것이었다. 식은땀을 흘린 탓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팔을 벌리자 자연스럽게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손길이 있었다. 귀에 닿는 심장박동 소리에 힘차다. 자신 때문에 놀랐는지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깊이 들이쉰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아, 당신의 향기. 이 그리웠던 품.

  “어디 아픈 건가?”
  “아니. 악몽을 꿨어나봐.”
  “무슨 꿈인지 기억나?”
  “그건……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슬프고 괴로웠던 것 같아요. 여태 멈추지 못한 눈물이 방울져 당신의 옷자락을 적신다. 지금 뱉은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라 하현은 눈치챘겠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귀 염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등을 다독거리는 다정함에 어린 연인은 모처럼 자신의 사랑에게 힘껏 어리광을 부려보기로 했다. 지나치게 고독했고, 힘들었다. 마치 영혼에 영겁이라는 천으로 짜인 두꺼운 옷을 걸친 것처럼. 당신의 위로가 절실할 만큼.

  “그러니까 입 맞춰주면 안 될까요, 하현?”

  시선이 마주치자 귀 염오는 축축하게 젖은 눈을 일부러 불쌍해 보이는 모양새로 뜨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꿈은 신묘하여 어떤 것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고 남에게 주어서도 안 된다고, 귀씨 일족의 가주를 둘이나 손수 길렀다던 노파 유모가 일러주었다. 천기를 누설하면 하늘이 노한다고. 이토록 강렬한 꿈에는 모두 뜻이 담겨 있고 의미를 얼마나 해석하느냐에 따라 금을 얻을지 화마를 피할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비록 귀 염오는 그런 미신적인 해석을 깊이 배운 적이 없지만. 꿈이 보여주는 일관된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모를 수 없었다.

  맹랑한 걸 본다는 시선이 이윽고 살포시 곡선을 그리고 부드러운 온기가 제 입술 위에 겹쳤다. 그 달콤한 사랑에 빠져들며 염오는 조만간 륭현에 자리한 귀씨 일족의 본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약한 마음은 하현에게만 주면 된다. 자신의 나약함. 어리숙함, 맹목적인 마음은 모두 그의 몫이다. 그동안 사랑에 겨워 안일한 생각을 품고 말았다. 우리가 안전해지려면 최후의 최후까지 적의 숨통을 끊어야만 하는 것을. 양손 가득 피를 묻히고 구족을 멸하여 원한의 한 획조차 그려지지 않도록. 그 자체로 타인의 공포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한다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겠지. 귀 염오의 눈매가 느리게 감겼다. 바빠질 하루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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