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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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사룡장락 2부 이후를 기준으로 날조함.</i>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만큼 타인에게 죽음을 선사하기 좋은 시기도 없다. 아무리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일지라도 축복으로 가득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정도는 근심 걱정을 내려둘 테니까. 그러니 선물과 기쁨이 아닌 죽음을 나눌 줄밖에 모르는 자가 이런 날이라고 해서 단란한 휴일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악귀들이 등 뒤에 칼을 숨긴 채 혈족의 자격으로 가가호호 하거나, 세력과 세력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화합이라는 말로 이루어진 거래의 장에서 가치를 팔거나, 그도 아니면 가장 값어치가 높은 죽음을 골라 선사하러 가거나. 귀염오에게 성탄절이란 딱 그 정도의 의의를 지녔다. 일의 연장선이자 위협이 가장 적은 날. 그 정도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외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청년은 알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불빛과 온기로 가득한 거리가 퍽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다.
늦은 시간까지 온 세상이 밝았다. 아무리 허름한 가게여도 문밖에 리본을 장식하거나 침엽수로 엮은 장식물을 걸어두어 모든 거리가 오늘만큼은 비슷한 양식을 띈 것처럼 보였다. 온갖 조명들이 콘페티를 뿌리듯 허공에서 반짝였다. 붉은색과 녹색, 금색이 화사하게 빛나는 거리는 겨울의 가장 긴 밤을 지난 뒤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오히려 거대한 트리를 장식한 다양한 오너먼트 사이에 눈이 내렸던 흔적이 남아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갖췄다는 느낌이었다. 맨 꼭대기에 놓인 황금별을 보았다. 트리에 아무리 많은 장식을 더 해도 꼭대기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것이 올라간다. 그렇다면 찬란한 저 별은 과연 고고할까, 아니면 외로울까.
“간식이라도 먹을까?”
네가 좋아하는 가게가 이 근처였지? 담담하지만 다정함이 녹아든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염오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보랏빛 눈동자는 이 환희 속에서 좀처럼 흐려지지 않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분한 검은 머리칼에 근사한 코트 차림, 머플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사람. 이 빛무리에 서 있어 더 돋보이는 외모의 사내.
“아뇨. 괜찮아요. 하현은 힘들지 않나요?”
“모처럼 나왔으니까.”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가자. 그 말을 끝으로 깍지 낀 손이 염오를 이끌었다. 두 인영이 인파에 뒤섞였다. 오늘은 염오가 스무의 중반에 다다르고 나서야 처음으로 남들처럼 제대로 맞이한 성탄절이었다. 그리고 라하현과 맞이한 특별한 날들 중의 하나였고 말이다. 온 세상이 들뜨는 바람에 염오 또한 그 분위기에 옮은 것처럼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쇼핑센터에서 옷을 사고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종종 괜찮은 식당에서 시간을 보낸 적은 있으나 이렇게 사람 속에 아무런 목적 없이 섞이는 것도, 뒷골목이 아닌 멀끔한 길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직도 손에 꼽는 일이었다. 어쩌면 신년 축제 이후로 처음인가? 익숙지 않은 탓에 자꾸만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사람에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쓸려가는 것처럼 낯설다. 너무 많아 경계심이 드는 건 만일이라는 불안한 가정과 그가 이런 날이면 줄곧 해왔던 행사가 떠오르기 때문일 테다. 그 와중에도 하현은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힐끔, 닿았던 시선을 재빨리 돌린다. 맞잡은 손의 온기를 의식한다. 당신은 누군가와 이렇게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을까? 그 사람을 당신은 이렇게 손을 잡았을까? 불쑥 떠오르는 호기심과 질투를 털어냈다. 뻔한 답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살았고, 매사에 모든 걸 능숙하게 대했으니까.
길을 벗어나고 나서야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깨닫는다.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유 모를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화려한 보석상자 같은 세상에 있지 않았다면 당신을 만날 수조차 없었을 거로 생각하니 그 삶을 미워하지는 못했다.
“염오.”
“네?”
“저기 너 있다.”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에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산타 복장을 한 강아지 인형이 유리 진열대 안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어 달라고 할 것 같은 얼룩 강아지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빤히 바라보자 “싫으면 병정 장난감은 어때? 네 나이대가 좋아할 것 같은데.”라며 태연자약하게 덧붙이는 거였다.
“저는 다 컸다니까요?”
발끈하려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토로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는지 그는 입을 가린 채 소리 내 웃었다. 신년에도 이런 식으로 붉은색 강아지 인형을 안겨주더니만 시시때때로 하현은 이런 장난을 치며 그를 귀여운 아이처럼 대하고는 했다.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썩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고심 끝에 염오가 택한 건 따지거나 투덜거리기보다 먼저 가게를 지나쳐 걸어가 버리는 거였다. 단정한 구둣발 소리가 뒤를 따르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옆에 나란히 선 그가 제 손을 쥐었다. 잠깐 사이에도 식은 온기에 염오는 곧장 제 외투 주머니에 잡은 손을 밀어 넣었다.
“장갑도 하나 살 걸 그랬네요.”
“하지만 손이 둔해지니까.”
“꽁꽁 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제 긴장은 풀렸나?”
당신의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쳐다봤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현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데구루루 눈동자를 굴리자 머리칼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뺨을 쓰다듬기를 잠시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내리며 입을 연다.
“너는 다른 게 신경 쓰이면 좋아하는 게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으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이런 날은 사람들 속에 섞이기 쉬우니까요.”
“그러면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
데이트는 충분히 했으니까. 다정한 질문에 염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설렘과 기쁨이 한껏 녹아든 면면이 자신이 알던 세상의 얼굴과는 참으로 달랐다. 생각해 보면 청년은 지금까지 이날을 이용하기만 해봤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갔는지 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누가 위협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 테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특별한 날을 좀 더 누리고 싶었다. 이 안에서 계속 걷다 보면 염오 자신도 저들의 얼굴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조금 더 구경하고 들어가요. 마침, 집에 찻잎도 떨어져 가니까요.”
“그러자. 다른 건 필요하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이 다시금 인파에 섞여 들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화가 이어지던 중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들은 반겼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며 잠시 조명이 어두워졌다.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이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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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만큼 타인에게 죽음을 선사하기 좋은 시기도 없다. 아무리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일지라도 축복으로 가득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정도는 근심 걱정을 내려둘 테니까. 그러니 선물과 기쁨이 아닌 죽음을 나눌 줄밖에 모르는 자가 이런 날이라고 해서 단란한 휴일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악귀들이 등 뒤에 칼을 숨긴 채 혈족의 자격으로 가가호호 하거나, 세력과 세력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화합이라는 말로 이루어진 거래의 장에서 가치를 팔거나, 그도 아니면 가장 값어치가 높은 죽음을 골라 선사하러 가거나. 귀염오에게 성탄절이란 딱 그 정도의 의의를 지녔다. 일의 연장선이자 위협이 가장 적은 날. 그 정도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외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청년은 알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불빛과 온기로 가득한 거리가 퍽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다.
늦은 시간까지 온 세상이 밝았다. 아무리 허름한 가게여도 문밖에 리본을 장식하거나 침엽수로 엮은 장식물을 걸어두어 모든 거리가 오늘만큼은 비슷한 양식을 띈 것처럼 보였다. 온갖 조명들이 콘페티를 뿌리듯 허공에서 반짝였다. 붉은색과 녹색, 금색이 화사하게 빛나는 거리는 겨울의 가장 긴 밤을 지난 뒤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오히려 거대한 트리를 장식한 다양한 오너먼트 사이에 눈이 내렸던 흔적이 남아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갖췄다는 느낌이었다. 맨 꼭대기에 놓인 황금별을 보았다. 트리에 아무리 많은 장식을 더 해도 꼭대기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것이 올라간다. 그렇다면 찬란한 저 별은 과연 고고할까, 아니면 외로울까.
“간식이라도 먹을까?”
네가 좋아하는 가게가 이 근처였지? 담담하지만 다정함이 녹아든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염오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보랏빛 눈동자는 이 환희 속에서 좀처럼 흐려지지 않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분한 검은 머리칼에 근사한 코트 차림, 머플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사람. 이 빛무리에 서 있어 더 돋보이는 외모의 사내.
“아뇨. 괜찮아요. 하현은 힘들지 않나요?”
“모처럼 나왔으니까.”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가자. 그 말을 끝으로 깍지 낀 손이 염오를 이끌었다. 두 인영이 인파에 뒤섞였다. 오늘은 염오가 스무의 중반에 다다르고 나서야 처음으로 남들처럼 제대로 맞이한 성탄절이었다. 그리고 라하현과 맞이한 특별한 날들 중의 하나였고 말이다. 온 세상이 들뜨는 바람에 염오 또한 그 분위기에 옮은 것처럼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쇼핑센터에서 옷을 사고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종종 괜찮은 식당에서 시간을 보낸 적은 있으나 이렇게 사람 속에 아무런 목적 없이 섞이는 것도, 뒷골목이 아닌 멀끔한 길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직도 손에 꼽는 일이었다. 어쩌면 신년 축제 이후로 처음인가? 익숙지 않은 탓에 자꾸만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사람에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쓸려가는 것처럼 낯설다. 너무 많아 경계심이 드는 건 만일이라는 불안한 가정과 그가 이런 날이면 줄곧 해왔던 행사가 떠오르기 때문일 테다. 그 와중에도 하현은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힐끔, 닿았던 시선을 재빨리 돌린다. 맞잡은 손의 온기를 의식한다. 당신은 누군가와 이렇게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을까? 그 사람을 당신은 이렇게 손을 잡았을까? 불쑥 떠오르는 호기심과 질투를 털어냈다. 뻔한 답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살았고, 매사에 모든 걸 능숙하게 대했으니까.
길을 벗어나고 나서야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깨닫는다.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유 모를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화려한 보석상자 같은 세상에 있지 않았다면 당신을 만날 수조차 없었을 거로 생각하니 그 삶을 미워하지는 못했다.
“염오.”
“네?”
“저기 너 있다.”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에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산타 복장을 한 강아지 인형이 유리 진열대 안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어 달라고 할 것 같은 얼룩 강아지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빤히 바라보자 “싫으면 병정 장난감은 어때? 네 나이대가 좋아할 것 같은데.”라며 태연자약하게 덧붙이는 거였다.
“저는 다 컸다니까요?”
발끈하려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토로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는지 그는 입을 가린 채 소리 내 웃었다. 신년에도 이런 식으로 붉은색 강아지 인형을 안겨주더니만 시시때때로 하현은 이런 장난을 치며 그를 귀여운 아이처럼 대하고는 했다.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썩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고심 끝에 염오가 택한 건 따지거나 투덜거리기보다 먼저 가게를 지나쳐 걸어가 버리는 거였다. 단정한 구둣발 소리가 뒤를 따르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옆에 나란히 선 그가 제 손을 쥐었다. 잠깐 사이에도 식은 온기에 염오는 곧장 제 외투 주머니에 잡은 손을 밀어 넣었다.
“장갑도 하나 살 걸 그랬네요.”
“하지만 손이 둔해지니까.”
“꽁꽁 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제 긴장은 풀렸나?”
당신의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쳐다봤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현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데구루루 눈동자를 굴리자 머리칼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뺨을 쓰다듬기를 잠시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내리며 입을 연다.
“너는 다른 게 신경 쓰이면 좋아하는 게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으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이런 날은 사람들 속에 섞이기 쉬우니까요.”
“그러면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
데이트는 충분히 했으니까. 다정한 질문에 염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설렘과 기쁨이 한껏 녹아든 면면이 자신이 알던 세상의 얼굴과는 참으로 달랐다. 생각해 보면 청년은 지금까지 이날을 이용하기만 해봤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갔는지 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누가 위협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 테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특별한 날을 좀 더 누리고 싶었다. 이 안에서 계속 걷다 보면 염오 자신도 저들의 얼굴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조금 더 구경하고 들어가요. 마침, 집에 찻잎도 떨어져 가니까요.”
“그러자. 다른 건 필요하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이 다시금 인파에 섞여 들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화가 이어지던 중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들은 반겼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며 잠시 조명이 어두워졌다.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이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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