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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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소리,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는 미세한 바스락거림, 창밖 너머의 희미한 소음, 이따금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라지는 모양이 눈꺼풀 안쪽에서 잔물결처럼 일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죄인지, 아니면 행운인지 귀 염오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잠귀가 밝아 새어 들어온 소리를 자장가나 경종처럼 여기고는 했다. 얕은 안식을 깨부순 소음이 좋은 의미였던 적은 손에 꼽으나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덤 같은 침묵이 아니더라도 확언할 수 있는 평온일 터였다. 메마른 볕이 내리쬔 공간이 솜이불 덮인 듯 포근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따뜻한 온기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다시 수마에 빠져들어도 좋을 나른한 유혹 앞에 잠시 고민하던 이가 슬쩍 감은 눈을 떴다.
반듯한 어깨선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면 연초와 이름 모를 꽃과 묵직한 사향 냄새가 뒤섞인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두 겹의 천을 사이에 두고도 심장 박동은 선명히 제 몸을 두드려 온기의 주인을 알린다. 제 속에 들어와 둘이 하나인 양 공명하는 울림이 다정하다. 이대로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가 까르르 웃으며 깊숙한 어딘가로 내달려 사라졌다.
그 핏줄의 후계자라 불리는 것들은 경계와 경쟁으로 신경이 곤두선 가시와 같기에, 그들의 일부인 염오 또한 누군가의 품에서 눈을 뜨는 하루가 당연한 삶이 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따금 이 평화를 제가 누릴 자격이 되는지 의문을 품는다. 멋대로 누린 행복에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목울대 아래 드리운 날붙이처럼 닿았다 떨어졌다. 어쩌면. 정말로. 그 선연한 감각을 잊으려 품에 연신 뺨을 비비자 책 덮는 소리와 함께 양손이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사람 하나의 온기가 불붙은 가지를 잠재워 다시 싹을 틔운다.
“잘 잤어?”
“덕분에요. 하현은 불편하지 않았나요?”
“그럴 리가. 오히려 따뜻해서 좋았는데.”
뺨에 닿은 입술에 가슴 한가운데가 간질거렸다. 그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듯 깊은 눈동자 속에 담긴 애정이 봄눈 녹이듯 다가와 염오를 품에 가뒀다. 서리같이 날카로운 불안은 이 속에 파고들어 무엇도 탐하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듯이, 라 하현은 귀 염오를 자신의 것이라 이른 뒤로 한결같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표는 언제고 존재해왔다. 그제야 청년은 자신의 현실로 돌아와 숨을 들이켠다.
“저도요. 당신 품이 너무 좋아서 계속 자고 싶었어요.”
“그럼 내 얼굴은 언제 보려고?”
“그래서 꾹 참고 눈 떴잖아요. 잘했죠?”
“내 강아지 착하네.”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웃음에 따스함이 녹았다.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을 전부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매 순간, 매초, 사랑이라 뱉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는 찾아온다. 하현의 시선, 손짓, 목소리, 언어, 심지어 옅은 웃음에서도. 염오는 하현의 모든 부분에서 식은 찻물의 향을 떠올렸다. 풋풋하면서도 구수하고 혀끝에 아주 잠시 감돌던 달곰한 감미의 향. 쓰지 않고 청량했던 목청의 물결. 저릿하고 뭉근하다가도 숯불처럼 쉬이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 그 하나하나를 곱씹으면 희고 검은 글자의 틀을 넘어 그에게 직접 닿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결되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해도 될까요?”
“안 된다고 하면?”
“된다고 할 때까지 가련하게 쳐다봐야지.”
“너무 오냐오냐 키웠군.”
“오냐오냐 자라서 싫어요?”
“아니. 좋아.”
나는 당신한테만 그러니까 봐줘요. 알고 있으니 예뻐할 수밖에. 새들의 인사처럼 가볍게 맞닿은 입술 틈으로 숨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행복이라면 어떤 값을 치르든 갖고 싶다. 당신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귀 염오는 라 하현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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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소리,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는 미세한 바스락거림, 창밖 너머의 희미한 소음, 이따금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라지는 모양이 눈꺼풀 안쪽에서 잔물결처럼 일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죄인지, 아니면 행운인지 귀 염오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잠귀가 밝아 새어 들어온 소리를 자장가나 경종처럼 여기고는 했다. 얕은 안식을 깨부순 소음이 좋은 의미였던 적은 손에 꼽으나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덤 같은 침묵이 아니더라도 확언할 수 있는 평온일 터였다. 메마른 볕이 내리쬔 공간이 솜이불 덮인 듯 포근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따뜻한 온기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다시 수마에 빠져들어도 좋을 나른한 유혹 앞에 잠시 고민하던 이가 슬쩍 감은 눈을 떴다.
반듯한 어깨선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면 연초와 이름 모를 꽃과 묵직한 사향 냄새가 뒤섞인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두 겹의 천을 사이에 두고도 심장 박동은 선명히 제 몸을 두드려 온기의 주인을 알린다. 제 속에 들어와 둘이 하나인 양 공명하는 울림이 다정하다. 이대로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가 까르르 웃으며 깊숙한 어딘가로 내달려 사라졌다.
그 핏줄의 후계자라 불리는 것들은 경계와 경쟁으로 신경이 곤두선 가시와 같기에, 그들의 일부인 염오 또한 누군가의 품에서 눈을 뜨는 하루가 당연한 삶이 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따금 이 평화를 제가 누릴 자격이 되는지 의문을 품는다. 멋대로 누린 행복에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목울대 아래 드리운 날붙이처럼 닿았다 떨어졌다. 어쩌면. 정말로. 그 선연한 감각을 잊으려 품에 연신 뺨을 비비자 책 덮는 소리와 함께 양손이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사람 하나의 온기가 불붙은 가지를 잠재워 다시 싹을 틔운다.
“잘 잤어?”
“덕분에요. 하현은 불편하지 않았나요?”
“그럴 리가. 오히려 따뜻해서 좋았는데.”
뺨에 닿은 입술에 가슴 한가운데가 간질거렸다. 그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듯 깊은 눈동자 속에 담긴 애정이 봄눈 녹이듯 다가와 염오를 품에 가뒀다. 서리같이 날카로운 불안은 이 속에 파고들어 무엇도 탐하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듯이, 라 하현은 귀 염오를 자신의 것이라 이른 뒤로 한결같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표는 언제고 존재해왔다. 그제야 청년은 자신의 현실로 돌아와 숨을 들이켠다.
“저도요. 당신 품이 너무 좋아서 계속 자고 싶었어요.”
“그럼 내 얼굴은 언제 보려고?”
“그래서 꾹 참고 눈 떴잖아요. 잘했죠?”
“내 강아지 착하네.”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웃음에 따스함이 녹았다.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을 전부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매 순간, 매초, 사랑이라 뱉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는 찾아온다. 하현의 시선, 손짓, 목소리, 언어, 심지어 옅은 웃음에서도. 염오는 하현의 모든 부분에서 식은 찻물의 향을 떠올렸다. 풋풋하면서도 구수하고 혀끝에 아주 잠시 감돌던 달곰한 감미의 향. 쓰지 않고 청량했던 목청의 물결. 저릿하고 뭉근하다가도 숯불처럼 쉬이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 그 하나하나를 곱씹으면 희고 검은 글자의 틀을 넘어 그에게 직접 닿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결되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해도 될까요?”
“안 된다고 하면?”
“된다고 할 때까지 가련하게 쳐다봐야지.”
“너무 오냐오냐 키웠군.”
“오냐오냐 자라서 싫어요?”
“아니. 좋아.”
나는 당신한테만 그러니까 봐줘요. 알고 있으니 예뻐할 수밖에. 새들의 인사처럼 가볍게 맞닿은 입술 틈으로 숨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행복이라면 어떤 값을 치르든 갖고 싶다. 당신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귀 염오는 라 하현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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