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 Pillars Christmas Gin 2020 & Arran Sherry Cask
<center><img src='
'
alt='img.jpg'
class='content-image'
style='max-width: 100%; width: fit-content; height: auto;'></center>
매끈한 광택이 체온에 서서히 녹아내리자 설탕보다는 과실 향을 품은 달콤함에 혀끝이 저릿했다. 곧이어 쌉싸름한 카카오 파우더의 질감이 묵직한 무게를 만들고 위스키 특유의 메케한 맛과 알코올의 잔잔한 향이 마무리하듯 이를 모두 아우르며 조화를 이룬다. 일련의 과정은 길지 않았으나 이 작고 부드러운 조각 하나가 참으로 정교한 짜임새를 갖추었다. 마치 어느 미술관에 갔을 적에 보았던 영화로운 시대의 작은 장신구처럼.
“나쁘지 않아.”
라 하현은 자신이 먹은 초콜릿에 다음과 같은 감상을 덧붙였다.
기묘한 동거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뒤로 단내 맡을 날이 참으로 많아졌다. 이는 행복에 관한 은유이며 지금과 같이 실재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든, 라 하현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이었다. 하기야, 그와 같은 인간에게 ‘행복’도 ‘미래’도 어울리는 단어는 아닐 테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라고 하지 않던가. 아마 과거의 자신에게 ‘너는 황룡회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지만, 지금은 앙큼하고 귀여운 연하의 애인과 마주 앉아서 초콜릿을 먹게 된다. 아주 즐거운 신혼이다.’라고 말하면 개소리라 치부하여 대꾸도 없이 총부터 겨누고 남을 터였다.
“이거라면 좋아할 것 같았어요.”
미처 넘기지 못한 책장의 귀퉁이를 문지르다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썼다. 별거 아닌 감상이어도 긍정적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지 턱을 괴고 있던 청년이 배시시 웃었다. 느리게 오르내린 목울대가 다디단 잔해를 삼킨다. 그의 어린 애인은 종종 자신에게 이런 것들을 하나씩 내밀고는 했다. 좋아하는 간식, 직접 우린 차, 듣고 있던 음악. 걷기 좋은 길,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 한적한 가로등 아래. 이럴 때는 꼭 장난감이나 산책용 목줄을 물고 와서 기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강아지 같이 보였으나, 무릇 연상의 미덕이란 이런 속내를 잘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물론 가끔은 앙칼진 지저귐 하나 듣기 위해 흔들리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건 어때?”
“술이 들어갔는데 달콤해요. 오렌지 향도 나고. 하현도 하나 줄까요?”
“아니.”
손을 뻗어 귀 염오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묵직한 몸은 한 치 의문도 없이 라 하현을 향해 기울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뿌리치고 저 단단한 팔뚝으로 목을 짓누를 수 있을 테지. 그러나 애인의 손만 닿으면 배라도 발랑 까뒤집은 강아지처럼 부끄럼 하나 없이 구니 그 모양새를 어여삐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볍게 닿은 입술을 깨물자 짧은 신음과 함께 약간 벌어진 틈새로 녹진하고 결이 다른 단내가 풍겼다. 그 사이를 비집자 그를 반긴 것은 뜨거운 숨결과 푸딩의 풍미였다. 체온에 사르륵 녹은 것은 같으나 라 하현이 먹은 것이 술을 디저트로 만든 것이라면, 귀 염오가 머금은 것은 디저트가 술의 흉내를 내는 양 향긋하고 간질거렸다. 정향과 시나몬의 강렬함도 이 음식을 좀 더 탐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일 뿐. 새삼스럽게도 어린 애인은 좋아하는 걸 내미는 순간에도 입에 맞길 바라는 양 하나하나 고르는 것이 신중했다. 자신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선호하지만 라 하현에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내민다던가, 지금처럼 맛이 치우치지 않은 것을 그의 앞에 놓아준다든가 하는. 그런 사소한 행동이 귀 염오가 표현하는 애정임을 라 하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혜택을 누릴 유일한 상대가 단 하나라는 것도. 그러니 라 하현이 이 치우침이 거북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녹아 흩어진 초콜릿을 훑듯 혀를 문지르자 움찔거린
귀 염오의 손끝이 테이블이 단단히 짚었다.
“음…… 역시 달군.”
“…….”
“하나 더 먹을래?”
채 눈을 뜨기도 전에 재빨리 고개부터 끄덕이는 앙큼한 욕망이 사랑스러워 라 하현은 소리죽여 웃었다. 깜찍한 애인의 귓불이 머리카락만큼 붉게 물들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혼자뿐이었다.
'alt='img.jpg'
class='content-image'
style='max-width: 100%; width: fit-content; height: auto;'></center>
매끈한 광택이 체온에 서서히 녹아내리자 설탕보다는 과실 향을 품은 달콤함에 혀끝이 저릿했다. 곧이어 쌉싸름한 카카오 파우더의 질감이 묵직한 무게를 만들고 위스키 특유의 메케한 맛과 알코올의 잔잔한 향이 마무리하듯 이를 모두 아우르며 조화를 이룬다. 일련의 과정은 길지 않았으나 이 작고 부드러운 조각 하나가 참으로 정교한 짜임새를 갖추었다. 마치 어느 미술관에 갔을 적에 보았던 영화로운 시대의 작은 장신구처럼.
“나쁘지 않아.”
라 하현은 자신이 먹은 초콜릿에 다음과 같은 감상을 덧붙였다.
기묘한 동거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뒤로 단내 맡을 날이 참으로 많아졌다. 이는 행복에 관한 은유이며 지금과 같이 실재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든, 라 하현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이었다. 하기야, 그와 같은 인간에게 ‘행복’도 ‘미래’도 어울리는 단어는 아닐 테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라고 하지 않던가. 아마 과거의 자신에게 ‘너는 황룡회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지만, 지금은 앙큼하고 귀여운 연하의 애인과 마주 앉아서 초콜릿을 먹게 된다. 아주 즐거운 신혼이다.’라고 말하면 개소리라 치부하여 대꾸도 없이 총부터 겨누고 남을 터였다.
“이거라면 좋아할 것 같았어요.”
미처 넘기지 못한 책장의 귀퉁이를 문지르다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썼다. 별거 아닌 감상이어도 긍정적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지 턱을 괴고 있던 청년이 배시시 웃었다. 느리게 오르내린 목울대가 다디단 잔해를 삼킨다. 그의 어린 애인은 종종 자신에게 이런 것들을 하나씩 내밀고는 했다. 좋아하는 간식, 직접 우린 차, 듣고 있던 음악. 걷기 좋은 길,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 한적한 가로등 아래. 이럴 때는 꼭 장난감이나 산책용 목줄을 물고 와서 기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강아지 같이 보였으나, 무릇 연상의 미덕이란 이런 속내를 잘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물론 가끔은 앙칼진 지저귐 하나 듣기 위해 흔들리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건 어때?”
“술이 들어갔는데 달콤해요. 오렌지 향도 나고. 하현도 하나 줄까요?”
“아니.”
손을 뻗어 귀 염오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묵직한 몸은 한 치 의문도 없이 라 하현을 향해 기울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뿌리치고 저 단단한 팔뚝으로 목을 짓누를 수 있을 테지. 그러나 애인의 손만 닿으면 배라도 발랑 까뒤집은 강아지처럼 부끄럼 하나 없이 구니 그 모양새를 어여삐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볍게 닿은 입술을 깨물자 짧은 신음과 함께 약간 벌어진 틈새로 녹진하고 결이 다른 단내가 풍겼다. 그 사이를 비집자 그를 반긴 것은 뜨거운 숨결과 푸딩의 풍미였다. 체온에 사르륵 녹은 것은 같으나 라 하현이 먹은 것이 술을 디저트로 만든 것이라면, 귀 염오가 머금은 것은 디저트가 술의 흉내를 내는 양 향긋하고 간질거렸다. 정향과 시나몬의 강렬함도 이 음식을 좀 더 탐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일 뿐. 새삼스럽게도 어린 애인은 좋아하는 걸 내미는 순간에도 입에 맞길 바라는 양 하나하나 고르는 것이 신중했다. 자신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선호하지만 라 하현에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내민다던가, 지금처럼 맛이 치우치지 않은 것을 그의 앞에 놓아준다든가 하는. 그런 사소한 행동이 귀 염오가 표현하는 애정임을 라 하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혜택을 누릴 유일한 상대가 단 하나라는 것도. 그러니 라 하현이 이 치우침이 거북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녹아 흩어진 초콜릿을 훑듯 혀를 문지르자 움찔거린
귀 염오의 손끝이 테이블이 단단히 짚었다.
“음…… 역시 달군.”
“…….”
“하나 더 먹을래?”
채 눈을 뜨기도 전에 재빨리 고개부터 끄덕이는 앙큼한 욕망이 사랑스러워 라 하현은 소리죽여 웃었다. 깜찍한 애인의 귓불이 머리카락만큼 붉게 물들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혼자뿐이었다.
- 이전글短話 :: 白日夢 1篇 25.11.10
- 다음글Cherish 25.11.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