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話 :: 白日夢 1篇

규우 @alea_07
2025-11-1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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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싹 마른 이불의 포근함에 청년은 눈을 떴다.

  한낮의 햇볕이 창문을 투과한 작고 아담한 공간은 눈에 익은 곳이기도 했다. 복잡한 뒷골목의 어딘가, 빽빽한 닭장과도 같이 쌓아 올려진 건물의 수많은 문 중 하나, 간신히 두 사람이 부대끼며 지내기에 나쁘지 않은, 새것도 아니며 낡은 것도 아닌 생활감이 녹아든 곳. 그와 자신이 사는 집이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바람은 학라의 옥수 섞인 청량한 냄새가 묻어났고, 무형의 손길이 흐트러뜨린 옷과 머리칼 사이사이로 제 것이 아니되 익숙한 냄새를 실어 나른다. 미처 지워내지 못한 담배의 잔향과 독특한 향수 냄새. 흐릿한 샴푸의 부드러움, 그리고…….

  자신을 품 안으로 끌어당기는 미약한 힘과 천 하나를 두고 등 뒤에 바짝 닿은 온기에 솜털이 일어났다. 일순간 청년은 숨을 멈췄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달리 선명하게 귓가를 간질였다. 그 사이로 아주 얕고 잔잔한 호흡 또한 길게 이어졌다. 바깥에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이따금 장사치들의 외침이 멀리서 메아리칠 뿐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양 참으로 안온한 소리로만 가득 찬 세상이었다. 제 몸에 얽힌 온기 하나를 떨쳐내지 못한 채 청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무해한 존재감에 온몸의 힘이 쭉 빠지더니 나른한 감각이 제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와 미약한 의지조차 꺾은 탓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생경한 경험이 불쾌하기는커녕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몇 시간이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죽음을 걱정하지 않고, 밑바닥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에 당신만 함께 해준다면. 청년은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이불의 눅눅함에 청년은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정신이 부유하더니 이윽고 둔중한 두통이 머리를 쪼개듯 파고들었다. 부산스러운 발소리, 언성 높인 목소리에 섞인 거친 사투리가 바닥을 타고 귓속에 내리꽂힌다. 딱딱한 합판이 깔린 침대에서 일어나면 생활감은 있되 낯설기에 짝이 없는 우중충한 공간이 그를 반겼다. 죽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 무방비했다. 만일 이 꼴을 동기가 본다면 어리석어 죽일 가치도 못 느꼈을 테다. 자조적인 웃음이 잇새로 비어져 나왔다. 비록 이 상황이 죽음을 목적으로 벌인 게 아님을 모를 수 없으나, 그 사실이 안전과 동등한 의미는 아니다. 문가로 다가가기 무섭게 격양된 목소리를 총성 한 발이 잠재웠다. 깊은 침묵. 핏물이 물줄기를 이루며 제 발치까지 흘러들어왔다. 쇠 비린내, 화약 냄새 그의 삶에서 가장 익숙한 그 향기와 색채. 싸늘한 긴장감에 솜털이 쭈뼛 일었다. 그리고 느린 발소리와 새된 비명처럼 열어젖힌 문 너머로 보이는 보랏빛 눈동자.

  “때가 왔다. 귀 염오.”

  여름 장마처럼 서늘한 목소리에 그제야 흐릿한 꿈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순식간에 온기는 멀어지고 한낮의 햇볕은 짓밟혀 조각조각 부서지고야 만다. 현실이 아귀를 벌린 채 그를 맞이하였다. 이곳에는 서늘하고 비릿한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몽롱한 무의식 속에 숨겨둔 바람은 오로지 귀 염오 혼자만이 꿈꾼 것이었다.

  주어진 삶은 텁텁한 갱지만도 못했다. 짙게 가라앉은 눈동자 속에는 3년을 인내하여 벼린 욕망이 번뜩이고 있었다. 거래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당신의 시선에 청년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쩌면 수치심이었을까. 그저 제자리로 돌아갈 뿐인데도 심장 어딘가를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불쾌하고 불편한 감각.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설령 자신조차도 그 꿈을 실현하길 바라지 않는다. 거머쥘 수 있는 결실은 그런 안온한 것들이 아니다. 살고자 한다면 오로지 끝으로 향해야만 한다.

  “드디어 황룡회가 움직였나?”

  무거운 목소리가 비린내 나는 공기를 갈랐다.




<p style=&#034;text-align: right;&#034;><i>那不是你,那不是我的心爱。</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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